안녕하세요 연연입니다.
12·12사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군사 쿠데타로 평가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당시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래에서 사건의 배경, 전개 과정, 그리고 역사적 의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2·12사태의 배경
1979년 10월 26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며 권력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력 공백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를 틈타 당시 육군 소장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군부 내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건의 전개
1. 준비 단계
전두환은 당시 합동참모본부의 보안사령관으로, 군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특히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9사단과 1공수여단 등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실질적인 군사력을 준비했습니다.
2. 쿠데타 실행 (12월 12일)
- 김재규 체포: 10.26 사건 이후 내란 혐의로 김재규가 체포되었으나, 이를 빌미로 신군부는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였습니다.
-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 12월 12일 밤, 신군부는 당시 국군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를 쿠데타 혐의로 체포하며 군 지휘권을 장악했습니다.
- 서울 장악: 이후 서울 지역 주요 군부대를 동원하여 정권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습니다.
3. 권력 장악
신군부는 군 지휘 체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사실상 정치적 실권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1980년 5·17 쿠데타를 통해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하여 사임하게 하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12·12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군부 독재의 기틀을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군부 세력이 정치적 권력을 직접적으로 장악했으며, 이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부정적 평가
-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군부 독재 체제를 공고히 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 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고,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등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결론
12·12사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군사적 권력 장악이 어떻게 국가 체제를 뒤흔들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군사정권의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참고 : 위 내용은 챗gpt를 활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
남웅종 / 김호영 / 신윤희 / 최석립 / 심재국 / 허삼수 / 김진영 / 허화평 / 이상연 / 이차군 / 백운택
박준병 / 이필섭 / 권정달 / 고명승 / 정도영 / 장기오 / 우국일 / 최예섭 / 조홍 / 송응섭 / 장세동 / 김택수
이상규 / 최세창 / 박희도 / 노태우 / 전두환 / 차규헌 / 유학성 / 황영시 / 김윤호 / 정호용 / 김기택
다음은 하나회 명단입니다.(하나회는 육군사관하고 출신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기수 | 명단 |
11 |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최정택, 백운택, 노정기, 권익현 |
12 | 박준병, 박희도, 안필준, 최웅, 이상규, 황인수, 임인식, 정동철, 이광근, 박세직 |
13 | 최세창, 최문규, 정진태, 윤태균, 정동호, 권영휘, 우경윤, 이우재, 조명기, 신재기, 오한구 |
14 | 이종무, 문영일, 장홍열, 장기하, 정도영, 배명국, 안무혁, 박정기, 이춘구 |
15 | 고명승, 권병식, 나중배, 민병돈, 이진삼, 이대희, 이상수,박태진, 박종식, 이삼술,김상구, 이한종 |
16 | 장세동, 최평욱, 정만길, 신말업, 이필섭,김충식, 김정용, 이지윤, 양현두, 최원규, 정순덕 |
17 | 김진영, 임인조,김태섭, 이병태,이문석,이해룡,이현우, 안현태,강명오, 허삼수, 허화평, 유근하 |
18 | 구창회, 김재창, 조남풍 배대웅, 김정헌,강환근, 반준석,이승남,장석린, 성환옥, 이시용, 이학봉, 조용암 |
19 | 강상진,김상준, 김정환,김진선,김택수,박광영,서완수,이중환,이택형,최부웅,최권영,최준식,최석립,최윤수,장석규 |
20 | 김종배, 김길부, 함덕선,김무웅,안광열,허청일, 장호경,이현부,안병호, 한광덕,이경열 |
21 | 이충석,최승우,표순배,여명현, 전영진, 강창남, 신윤희, 구태도, 박창규, 홍순용 |
22 | 유효일, 유회국, 신양호, 오형근, 장성득, 박범무, 구너기대, 최기홍, 조성호 |
23 | 손수태, 정정택, 박영일, 길영철, 서중일, 김현수, 오주의 |
24 | 민병국, 홍한수, 윤영정, 강영욱, 유보선,채문기, 권중원 |
25 | 안광찬,황진하, 이상제,이상선,임인창,박석조,장세영,권경석,진병국,강창희, 유수재 |
26 | 이상학, 김익성, 임문택, 안대환, 최홍규, 이기영 |
27 | 서삼섭, 제정관,김부명,김준섭,김용석,신용수,이해호 |
28 | 김진황,안병윤,임종국,김명길,이채인,이영우,권영욱,김익환,장용운 |
29 | 박항규,이명구,최득묵,한동원,강대구, 조성호, 나병태, 정두찬,홍원기 |
30 | 김정근, 김용기, 조윤기,이현중,방정한,권행근,김덕근,하형규 |
31 | 윤희만,이진우,최종대,임치규,김용수,한성동 |
32 | 안학승,차철이,신경철,최진학,이기원,한기엽,이남호,김선도,이평희, 김동화, 허육, 신태섭 |
33 | 김경규,김열수,박영록,김형원,민병달,용삼남,손삼수,이정훈,방동환 |
34 | 이해평,김정국,김홍식,노정수,김형배,이윤규, 장사용, 조영천, 박종재 |
35 | 송영활,신동혁,정길현,김은홍,유제승,박정욱,최승주,심택용,김석순,정병욱 |
36 | 김용빈,김종만, 김현집, 장창록, 최계명, 김달수, 강형준,최익봉,김창용,조인상 |
위 하나회 명부는 2005년 2월 신동아에서 최초 공개된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사조직이다보니 누락된 이들도 많고 다른 사조직으로 개명되어 명부에서 빠진 이도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 합수부의 하나회 색출 작전때 정치 장군들과 어울리며 주요보직을 받은 사람들을 회원으로 추정하였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지만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내란을 꾀하였으니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불안정한 내국의 상황을 맞아 서울의 봄 영화나 1212사태를 되짚어 보니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해당 포스팅은 어떠한 정치적 편향없이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작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