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불면증이라는 걸 앓아본 적이 없다.
머리만 닿으면 쿨쿨 잘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오늘은 핫식스 때문인지 진짜 잠이 안와서 한 마디 쓰고 자야겠다.
이렇게 허투루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주부가 되고 나서 일분일초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세탁실에 빨래를 가지러 갔다가 두 시간 후, 나는 아이 방에서 레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빨래를 꺼내려다 세탁실 구석이 눈에 걸렸고, 청소 도구를 찾다 화장실을 닦았고, 나오는 길에 떨어진 옷가지를 집었고, 그러다 아이 방까지 흘러들어갔다. 마침내 빨래를 마무리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가지 일을 끝내고 다른걸 하면 될텐데... 일을 너무 두서없이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었다. 나도 가끔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처음엔 나도 내가 성인 ADHD이거나, 그냥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거나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냥 바빠서다."
집안일이란 리스트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지 않은가?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밀린 일들을 해치워야 하고, 그 일들 사이로 또 다른 일들이 끼어든다.
한 가지를 끝내기도 전에 다음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에게 심부름을 너무 많이 시킨다! 이거해달라 저거 해달라.. 그러다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나는 더 정신없이 하루종일 종종 걸음이지뭐 —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쨌든 나는 이러든 저러든 다 하긴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습관 같은 것이다. 잘 기억하지 않기. 잘 잊어버리기.어렵고 힘든일이나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할 땐 잊어버리게 된다. 그땐 어려서 몰랐던 것도 있고 또, 도와달라고 하는 법을 몰랐다. 나에겐 어릴 적 어머니가 나를 잘 챙겨주지 않았다. 그녀도 나름의 어려움과 힘들었을 것이고 홀로 딸 셋을 키우기는 버거웠을 것이다. — 해서 나는 어른이 아이를 도와줄 수 없다는 불신이 생긴 듯 하다. 그 시절부터 나는 침묵과 회피만이 그 상황들을 헤쳐나가는 힘이라고 믿었다. 가장 빨랐고 너무 쉬웠고. 대체적으로 후회는 남지만 실패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억하는 법이 아니라 — 잊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 습관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이 알림장 한 줄 한 줄, 지나치듯 던진 아이의 말 한마디, 남편의 출장 일정, 내일 아침 도시락 반찬. 엄마의 하루는 기억해야 할 것 투성이다.
나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나누자고 말하지 않았다. 안 시킨 것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 가끔 생색이란 걸 내고 싶기도 했다. 봐라, 나 없으면 이 집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주는 생색. 나 혼자만 버거운 생색.
우습지만, 그 마음이 나를 오늘도 움직인다.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주부가 이 세상에 절반은 있지 않을까? 있을텐데~ 있을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사람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게 나의 개인적인 결론이며 남편의 일처리 논란에도 태연히 넘어갈 수 있는 힘이다.
어쨌든 다 해내고 있다는게 대견하지 않은가?
그렇게 일이 벌어지고 벌어져도 결국에는 다 정상으로 돌아오니까.
